3화. 카일이라는 남자
카렌 가공소는 아르덴 거리 옆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 물가 구역에 있었다.
창밖의 포목점은 진작 자취를 감추고 세탁장과 염색 공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노라는 한동안 말없이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럴 줄 알았어요.”
“포목점이 가공소로 바뀌었을 뿐이잖아. 아직 상점가라고 볼 수도 있어.”
노라는 대답 대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차는 카렌 가공소 정문 앞에서 멈췄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따라 내리려던 노라가 눈을 크게 떴다.
“혼자 들어가시려고요?”
“장부 몇 장만 확인하면 돼. 호위까지 데려가면 괜히 경계할 거야.”
“그래도요.”
“사무동이 여기서 보이잖아. 금방 다녀올게.”
호위가 넓은 마당 너머를 확인했다.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부르십시오.”
나는 혼자 정문을 지났다. 마당을 가로질러 사무동 앞에 이르자, 조금 전의 두 남자가 서 있었다. 갈색 머리의 남자가 나를 알아보고 웃었다.
“하벨에서 아까 뵈었죠.”
“그랬던가요?”
“확인할 게 겹친 모양이네요.”
“그럴지는 아직 모르죠.”
남자의 웃음이 조금 깊어졌다. 동의인지 경계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사무동에서 가공소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나왔다. 나는 소개장을 내밀었다.
“지난달 주문한 노르델 모직 여섯 건이 여기서 합배송됐다고 들었어요. 최종 인계까지만 대조하러 왔습니다.”
갈색 머리의 남자가 한 걸음 다가섰다.
“저희도 같은 물건입니다. 서부로 넘어가는 세 건요. 수취 경로 확인입니다.”
가공소 주인은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일행이십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대답이 겹쳤다.
“……한 번에 보시죠. 두 번 꺼내기 번거로운 서류라.”
갈색 머리 남자의 시선이 아주 짧게 뒤로 향했다. 검은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 의논이 아니라 허락이었다.
“그러죠.”
가공소 주인은 우리를 장부실로 안내했다.
“성함을 적어두겠습니다. 열람 기록은 남겨야 해서요.”
“엘이에요.”
“테오입니다.”
가공소 주인의 펜이 마지막 남자 앞에서 멈췄다.
“……카일입니다.”
대답이 조금 늦었다. 세 사람 모두 성을 아꼈고, 이름을 대는 데 망설인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이 방에서 제일 정직한 것은 장부뿐일 듯했다.
가공소 주인이 꺼낸 것은 여섯 건을 한 마차에 실어 보낸 합배송 인계표였다. 우리 세 사람의 몸이 동시에 종이 위로 기울어졌다.
레비엔 북문 물류창고 제2보관동. 발주처 지정 운송인.
서부로 간다던 물건의 도착지는 수도 북문이었다. 그런데도 카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그를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종이에서 눈을 뗀 뒤였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한 채 가공소 주인에게 물었다.
“이 물건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시는 거죠?”
“운송인이 북문에서 인수 확인을 받아 왔고, 카렌의 일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다음은 북문 창고에서 확인하셔야겠죠.”
가공소 주인이 별지를 한 장 넘겼다. 보관 기한이 끝나가니 예정대로 찾아가라는 북문 창고의 통지 사본이었다.
날짜는 사흘 뒤. 찾아갈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그날 물건이 정말 서부로 갈지는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확인은 끝나셨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가공소 주인은 인계표를 서류철에 끼웠다.
종이가 사라지기 직전, 카일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나와 같은 곳이었다.
사흘 뒤, 북문 물류창고.
장부실 옆문으로 나오니 인부들이 한창 마감 작업 중인 뒤뜰이었다. 해가 굴뚝 뒤로 기울고 있었다. 아버지가 정한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인부들은 처마 아래의 마차를 끌어내고 있었다. 앞바퀴가 돌바닥의 홈에 걸렸다. 마차가 덜컥 멈추는 순간, 이층에서 밧줄이 미끄러졌다.
“줄이 풀렸어!”
물 먹은 천 뭉치가 마차 옆으로 떨어졌다. 말이 놀라 앞다리를 들었다. 마차가 홈을 타고 옆으로 밀렸다.
인부 하나가 소리를 지른 것은 그때였다.
“거기, 비켜요!”
내 발이 멈췄다. 말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우는 순간 무릎이 굳었다. 물러나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
말을 무서워한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기억이 없다는 말은 아무 뜻도 되지 못했다. 이 몸이 겪은 것은 이 몸만 알고 있었다.
“그대로 계십시오.”
낮은 목소리가 소란을 가르고 들어왔다. 검은 외투가 시야를 채웠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등이었다.
카일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도 없는 사람처럼, 말의 재갈 아래를 움켜잡았다. 카일은 말의 목을 옆으로 꺾고 손등으로 목덜미를 두 번 눌렀다.
“마차부터 받쳐 주십시오!”
반대편에서 테오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인부들이 마차 뒤로 붙었다. 한 사람이 바퀴를 받치는 동안 테오는 떨어진 천 뭉치를 걷어냈다. 말의 앞다리가 돌바닥으로 내려왔다.
카일이 천천히 손을 놓았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네.”
목소리가 바로 나오지 않아서 나는 입술을 한 번 적셨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내 얼굴이 아니라 발이었다.
아직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발.
나는 뒤늦게 한 걸음 물러났다. 뒤꿈치가 돌바닥을 긁었다.
그제야 카일의 시선이 올라왔다.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내가 움직이지 못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 떨어져 계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부탁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소란을 가르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남아 있었다. 낮고, 서두르는 데가 없는 목소리였다. 무릎은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심장만 빠르게 뛰었다.
그 사이 말에게 돌아간 카일은 말의 목덜미부터 앞다리까지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놀란 말 앞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옆으로 피하거나 뒤에서 붙잡는다. 그게 배우지 않고도 나오는 행동이다. 정면으로 들어가 목을 꺾는 것은 배워야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이쪽을 들어 주시죠.”
인부가 천 뭉치를 들어 올리는 사이 테오가 밧줄 끝을 두 번 접었다. 고리에 밀어 넣고 손목을 비틀자 한쪽으로 쏠렸던 무게가 멎었다.
“이 매듭은 어떻게 풀면 됩니까?”
밧줄을 받아 든 인부가 매듭을 더듬었다. 테오는 매듭의 끝쪽을 가리켰다.
“그 끝만 당기시면 됩니다.”
나는 그 매듭을 알고 있었다. 이 몸의 기억 속에서 같은 매듭이 몇 번이나 떠올랐다.
서부에서 브레칸 회랑을 넘어온 짐마차는 모두 저 매듭을 쓴다. 산길에서 짐이 기울면 매듭 전체를 풀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베르디안의 서부행 화물이 창고에 들어오면 마부들은 늘 한쪽 끝만 당겨 짐을 풀었다.
하지만 마부들이 만든 매듭은 아니었다. 서부군 수송대에서 시작되어 서부 산길을 따라 퍼진 것이었다.
저걸 손에 익힌 사람은 둘 중 하나다. 그 길을 오래 다닌 마부이거나, 그 매듭이 처음 나온 곳에 있었거나.
카일은 놀란 말의 정면으로 들어갔다. 테오는 서부군의 매듭을 망설임 없이 묶었다. 서류를 확인하러 나온 사람들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 군인이라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놀란 말을 다루는 법과 허리의 검까지 겹치면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서부군이거나, 적어도 서부군과 깊이 관련된 사람들일 것이다.
가공소 밖으로 나오니 노라와 호위가 마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뒤뜰의 소동이 여기까지 들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오늘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는 호위의 입을 통해 아버지께 모두 보고될 것이다.
두 남자의 말은 길 반대편에 매여 있었다. 테오가 먼저 인사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또 뵙게 될 것 같군요.”
“글쎄요. 저는 대조가 끝나서요.”
사실이었다. 장부의 대조는 끝났다. 사흘 뒤 북문에 갈 일이 남았을 뿐이다.
나는 마차 발판에 발을 올렸다. 그때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물건들은 서부에서 주문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반 박자 쉬고 덧붙였다.
“베르디안 영애.”
나는 발판에 올렸던 발을 내렸다.
돌아보자 얇게 언 겨울 호수 같은 색의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승리한 얼굴은 아니었다. 확인을 끝낸 사람이 다음 반응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두건은 그대로였고, 내가 열람 기록에 남긴 이름은 엘이었다. 그는 내가 묻지 않은 것에 답했고, 내가 말하지 않은 이름을 불렀다.
대답을 고르기도 전에 그가 몸을 돌렸다. 테오가 뒤늦게 모자를 살짝 들어 보이고 뒤따랐다.
말발굽 소리가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가씨.”
노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는 분이에요?”
“아니.”
나는 마차에 올랐다.
모르는 사람이야, 나를 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