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북문에서 다시
칼릭스 헤스턴은 수도의 저택에서 세 거리 떨어진 안가에 있었다. 간판이 없는 삼층 건물이었다. 1층은 곡물 중개상에게 세를 놓았고 2층부터가 헤스턴 공작가가 오래전부터 유지해온 안가였다.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
테오가 들어왔다. 카렌 가공소까지 운송 조사원을 연기했던 남자는 오늘은 짙은 남색 군복을 입고 있었다.
“각하.”
그 한마디로 하벨과 카렌에서 쓰던 역할은 끝났다.
“확인했나.”
테오가 봉인된 회신 세 장을 책상에 놓았다.
“관문과 중간 검문소 기록을 전부 뒤졌습니다. 그만한 화물이 지나간 기록이 없습니다. 서부군도, 행정청도, 현지 신전과 치료소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칼릭스는 지도에서 손을 뗐다.
물건이 가다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수도를 떠나지도 않은 물건을 서류 위에서만 서부에 도착시킨 것이었다.
노르델산 모직 3천 벌 분량. 물건을 주문한 사람도, 하나로 모은 창고도, 대금이 나온 자리도 전부 수도에 있었다.
그 일은 그가 직접 수도에 올 이유가 되어주었다. 물건의 배후에서 엿보인 것은, 부모가 죽은 해의 기록에 남아 있던 것과 같은 흔적이었다.
그 흔적만은 남에게 맡길 수 없었다.
“하벨과 카렌에서 쓰신 이름 말입니다.”
테오가 회신을 정리하며 말했다.
“차라리 조회가 가능한 이름을 고르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선대 공작부인께서 부르시던 이름입니다. 저택에 오래 있던 사람을 조사하면 바로 알게 될 텐데요.”
보고서를 넘기던 칼릭스의 손이 잠깐 멎었다.
“불렀을 때 돌아볼 수 있는 이름이어야 하니까.”
드라벤에서 제국으로 건너온 어머니의 혀에서 그의 이름은 늘 두 음절로 짧아졌다. 그의 어머니는 제국식 발음을 끝까지 쓰지 않았다.
그렇게 부르던 사람은 8년 전에 죽었고 그 뒤로 그 이름을 입에 올린 사람은 없었다. 8년 만에 그 이름을 다시 꺼낸 것은 그 자신이었다.
칼릭스는 보고서를 한 장 넘겼다.
“베르디안은?”
“엘레인 베르디안, 열아홉. 베르디안 상단 수도 본점의 거래 실무를 맡아 왔습니다. 두 달 전 낙마 사고로 의식을 잃었다가 최근 깨어났고, 현재 회복 중입니다.”
“그게 전부인가.”
“특이사항으로는 오빠인 에드윈 베르디안이 황태자 전하의 배동이었다고 합니다. 베르디안 남매가 전하와 각별하다는 건 수도 사교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테오는 보고서를 덮지 않았다.
“그런데 하벨에서 스쳤을 때부터 알아보셨더군요.”
“마차 옆에서 호위와 시녀가 기다리고 있더군.”
장부를 대조하러 가공소까지 나오면서 그만한 수행을 달고 다니는 베르디안 상단 사람은 한 명뿐일 것이었다.
“베르디안 쪽은 조사 목적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두 달을 의식 없이 누워 있던 영애가 깨어나자마자, 여섯 명의 이름 뒤에 숨긴 주문을 정확히 골라냈다. 우연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빨랐다.
“영애의 사고 전 동선부터 봐.”
테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번 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모른다.”
“그런데 왜.”
“모르니 확인하는 거다.”
인수까지 하루. 그때까지 확인해야 할 것은 둘이었다.
서류 위에서 도착한 물건이 실제로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엘레인 베르디안은 왜 같은 흔적을 쫓고 있는가.
북문으로 가는 날, 나는 아침 일찍부터 본점 문서실에서 토비아스와 서부군 명부와 공보를 뒤지고 있었다.
토비아스에게 말해둔 것은 절반이었다. 지난달 노르델 모직 주문 여섯 건에 수취인이 없다는 것. 카렌에서 수취인으로 보이는 서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그들의 신원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말에는 토비아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습니다. 테오 바렌.”
토비아스가 펼친 로크바르 요새 탈환 공보를 내 쪽으로 밀었다. 로크바르 탈환전 당시 끊어진 연락망을 복구한 공으로 서훈받은 헤스턴 서부군 장교. 초상까지 카렌에서 본 남자와 대체로 일치했다.
“카일은요?”
“검토한 기록에는 전부 없습니다.”
카렌에서 본 두 사람은 위아래가 분명했다. 위는 카일이었다. 서훈받은 장교의 상관이라면 명부 어딘가에는 있어야 했다. 명부에 없거나, 맨 위에 있거나.
카일이라는 이름을 혀 안에서 천천히 굴렸다. 그 끝에 이름 하나가 걸렸다.
칼릭스 헤스턴.
“혹시 헤스턴 공작 본인일 가능성도 있을까요?”
“그럴리가요. 지금 드라벤 왕녀가 특사로 와 있는데, 헤스턴 공작이 서부를 비웠을 리 없습니다.”
“남에게 맡길 수 없는 일이라서 비밀리에 왔다거나?”
“직물 주문 몇 건을 확인하겠다고 공작 본인이 신분까지 감추고 수도의 직물점과 가공소를 돌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반박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토비아스가 미간을 좁힌 채 내 표정을 살폈다.
“그럴 만한 물건이라면, 아가씨께서 직접 확인하실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겠죠. 별다를 것 없는 직물 주문 몇 건인데요.”
중요하지 않다고 장담할 근거도, 중요하다고 인정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중요한 물건이라는 쪽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오늘의 외출은 문서실에서 끝날 터였다.
토비아스가 명부를 덮었다.
“공표되지 않은 부관이거나, 이름을 지우고 움직이는 정보 계통 사람일 겁니다.”
그렇다면 알아내기도 어려울뿐더러, 내가 그 이름을 파헤친다는 게 금세 드러날 것이다. 일단 카일의 진짜 이름을 알아내는 일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가 한 말의 값이었다. 서부에서 물건을 주문하지 않았다는 말이 거짓이라면 오늘 물건의 방향을 확인하는 순간 어차피 드러나게 되어 있다.
아래층에서 마차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계단을 내려가자 노라가 내 외투 깃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적어도 옷은 제대로 고르셨네요.”
나는 긴 외투 아래 회갈색 바지와 검은 장화를 갖춘 현장복 차림이었다.
정문에는 후작저의 호위 둘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한 명 많았다. 아르덴 거리에서 카렌까지 다녀온 값이었다.
여섯 건의 인계를 대조하는 것은 상단 업무라 아버지도 막지 않았다. 대신 어젯밤 지도에 본점에서 북문 창고까지 선을 긋고 조건을 달았다.
노라를 데려갈 것.
후작가 호위 두 명을 붙일 것.
상단 마차를 탈 것.
북문 물류창고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것.
결국 내가 얻어낸 것은 허락이라기보다 조건이 잔뜩 붙은 통행권이었다.
다 지킬 수 있는 조건이네.
적어도 출발하는 아침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북문은 아침부터 도시 하나를 더 토해내고 있었다. 상단 마차는 물류창고 제2동 맞은편에 멈췄다.
길 건너 처마 아래에는 먼저 온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카일과 테오였다. 두 사람 모두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테오가 우리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다시 뵙는군요, 베르디안 영애.”
“출고일을 같이 봤으니 놀랄 일은 아니죠.”
뒤에 서 있던 카일의 시선이 내 외투 아래의 바지와 장화에 잠시 머물렀다. 나는 그 시선을 뒤로 하고 사무실 창구에 상단 소개장과 주문서를 내밀었다.
“카렌 가공소에서 입고된 노르델 모직의 인수를 확인하러 왔어요.”
테오는 말없이 통행증을 내밀었다. 창고 서기가 두 문서를 차례로 읽었다.
“이 물량은 새벽부터 반출이 시작됐습니다.”
“인수 예정은 오늘 오전이던데요?”
“발주처 요청으로 앞당겨졌습니다. 지정 운송인이 나눠 실어 갔고요.”
나는 창밖을 보았다. 해는 성벽 위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창고가 일반 반출을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서기가 반출 장부를 돌려놓았다. 한 줄이 아니었다. 함께 들어온 물량이 여러 반출표로 나뉘어 있었다.
“마지막 물량까지 나갔나요?”
서기가 옆의 현황판을 확인했다.
“한 대가 아직 후방 적재장에 있습니다. 마감 확인 전이고요.”
물건의 방향을 확인할 마지막 기회였다.
“직접 볼 수 있을까요?”
서기가 안쪽 문으로 사라졌다가 회색 작업복의 출고관리인과 함께 나왔다. 관리인은 내 뒤의 노라와 호위 둘, 테오와 카일을 차례로 보았다.
“지금 적재 작업 중이라 외부인은 두 분까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수행원은 사무실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노라의 시선이 즉시 내게 꽂혔다.
“금방 다녀올게.”
“정말 마지막 마차만 보셔야 해요.”
호위 중 한 명이 나섰다.
“영애를 모시겠습니다.”
관리인이 고개를 저었다.
“무장은 들일 수 없습니다. 마차가 계속 움직이는 곳이라 사고가 나면 창고 책임입니다.”
임무 중인 호위는 무기를 넘길 수 없었다. 호위는 검자루를 쥔 채 문 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러면 출입구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관리인은 거기까지는 막지 않았다. 카일은 반출 장부의 마지막 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가지.”
테오는 잠깐 그를 보았다. 카일은 허리의 검을 풀었다. 검집째 건네받은 테오의 손이 무게만큼 낮아졌다.
“검까지 맡기시는 겁니까?”
“규정이라잖아.”
관리인이 임시 출입패 두 개를 꺼냈다. 나는 하나를 받아 외투 단추에 걸었다. 카일이 다른 하나를 받았다.
“다녀올게.”
내 말에 노라가 한숨을 삼켰다.
“해가 지기 전까지예요.”
아직 해는 낮게 떠 있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후방 적재장만 보고 돌아온다면.